姜斗弼
(187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두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7월부터 1910년 7월까지 강원도 평강(平康)ㆍ회양(淮陽)ㆍ금성(金城), 함남 안변(安邊) 등지에서 일본 헌병분견소를 공격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7월 26일 강원도 흡곡군(歙谷郡) 장동(長洞)에서 일본인 등 3명을 처단한 뒤, 이어 답전면(踏錢面) 왕마동(王馬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8월 5일 부하 약 30명을 거느리고 회양군 촌내면(村內面) 갈화리(葛花里)에서 전주 1개를 절단하여 일제의 통신을 마비시키고, 평강ㆍ회양ㆍ안변 일원에서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9년 9월 7일 흡곡군 답전면 옥장동(玉長洞) 동장에게 군수품 징발명령서(徵發命令書)를 송부하고 약철(藥鐵) 3천 근을 요구하였다. 1910년 4월 10일 부하 37여 명과 함께 회양 금곡(金谷)에서 평강헌병분견소 헌병과 교전을 벌이고, 신계점헌병분견소(新溪店憲兵分遣所)에 안변 영풍사(永豊社) 고련동(古連洞)에서 일전을 겨루자는 내용의 진동창의장(鎭東倡義將) 강두필 명의의 격서(檄書)를 보냈다. 1910년 4월 14일 이순필(李淳弼)ㆍ채응언(蔡應彦)ㆍ강차돌(姜此乭) 등과 금성군 회현헌병분견소(灰峴憲兵分遣所)를 공격하였다. 6월 22일에는 채응언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동방산(東方山)에서 의병 90명을 인솔하고 일본군과 접전하여, 헌병과 일본인 5명을 사살하였다. 1910년 7월 13일 강원도 금성군 기성면(岐城面) 창도리(昌道里), 7월 17일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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