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文周
1879-09-28 ~ 1945-03-1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문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옥구(沃溝) 사람이다. 그는 1919년 의군부(義軍府)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의군부는 동년 4월 이범윤(李範允)·진학신(秦學新)·최우익(崔友翼)·김현규(金鉉奎) 등이 동만주 연길현(延吉縣)에서 조직한 항일무장투쟁단체였다. 동단은 조직을 본부와 중부(中部)로 나누어 본부총재에 이범윤, 총사령에 김현규가 선임되었으며 중부는 참모장 고평(高平)을 중심으로 서무·재무·외교·통신·군법·헌병·군의의 부서가 있었는데 그는 군의 감독을 맡아 활동하였다. 특히 중부조직은 항일전투활동의 중심세력으로서 5개 대대의 예하 병력을 거느리고 본부와 유기적 연락을 취하면서 화룡·왕청·혼춘 일대의 일제세력 및 부일배들을 격퇴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1920년 8월에는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지방군과 교전을 벌였으며 뒤이어 습격한 일본군과도 치열한 격전을 폈다. 이후 의군부는 본부와 중부의 병력을 통합하여 군세(軍勢)를 확충하고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협력하며 대일항쟁을 계속하였다.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 당시에는 북로군정서·대한독립군과 함께 작전구역을 분담, 일본군을 협공·섬멸하는데 기여하였다. 청산리전투 후 노령(露領) 방면으로 이동한 의군부는 1921년 6월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의 수난을 겪었으나 군용을 재차 정비하여 항일무장투쟁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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