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炳修
1885-09-05 ~ 1972-09-3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字:泳叔(永叔), 山本炳修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병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1907년 봄 문경 출신 이강년(李康年)이 의병을 일으키자, 강병수는 그 휘하에 들어가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이강년 의진은 강원도·경상북도·충청도 일대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08년 12월 전국의 의병진이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양주에 집결해 13도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자,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참여하였다.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에 “강병수의 호는 신암(信庵)이며 문경에서 살았다. 한 편으로 싸우며 한 편으로 퇴각하는 중에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는 등, 1907~1908년 동안 의병장 이강년을 곁에서 보좌했다. 1908년 6월에 이강년이 교전 중 부상당하여 체포된 후에는 고향에서 은둔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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