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卜先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복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이익삼(李益三)의 한남창의소(漢南倡義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의병장 이익삼은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이후 경기도 용인군(龍仁郡)을 근거지로 광주(廣州)ㆍ죽산(竹山)ㆍ양성(陽城) 등지에서 부하 30~40명과 함께 친일파 처단, 일제 경찰 공격, 빈민 구제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강복선은 1908년 음력 4월 초순 이익삼의진에 들어가 같은 해 4월 11일경 이익삼이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발부한 "의병을 위하여 군수전 5천 냥을 내 놓아야 한다"는 내용의 고시문(告示文)을 경기도 광주군 궁내동(宮內洞) 주민에게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7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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