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聖鳳
1873-11-29 ~ 1951-07-2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성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북도 청도(淸道) 사람이다. 이곳은 3월 15일 밤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손기현(孫琪鉉) 등이 동포의 궐기를 촉구하는 20여매의 격문을 작성하여 운문면 방음동(雲門面芳音洞)·대천동(大川洞)·오진동(梧津洞) 일대에 붙였다가 18일 운문주재소에서 조사를 받은 바 있었다. 김진효(金鎭孝)·홍해성(洪海性)·김종태 등은 이날 조사를 받고 돌아오는 도중, 면사무소에 들어가 면서기들에게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제작하도록 부탁하여, 그것을 휘두르면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오후 6시경, 청도경찰서에서 일본경찰 1명과 순사보 4명이 김상구를 체포하기 위하여 출동했다가 부재중이자 대신 그의 어머니를 이웃의 문명학교(文明學敎)로 연행하려 하였다. 이때 이를 목격한 김의택(金義澤)·김병준(金秉濬)은 이를 말리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김병준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즉시 3백여명의 주민과 함께 곤봉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가 순사들에게 곤봉세례를 가하여 쫓아버렸다. 그러나 그는 곧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