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世濟
1899-03-18 ~ 1923-06-0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세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세제는 경남 통영군(統營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국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질 때 통영읍에서는 강세제를 비롯하여 진평헌(陳平軒)·권남선(權南善)·김형기(金炯綺)·양재원(梁在元)·배익조(裵益祚)·모치전(牟治田)·이학이(李學伊)·허장완(許章完) 등 각계 청년 18명의 주도 인물이 3월 9일 비밀리에 모여 통영 독립의거 개시를 협의하였다. 3월 12일 다시 비밀 모임을 갖고 선언서의 기초, 운동의 방법 및 선언서의 배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토의를 마쳤다. 3월 13일 오후 8시경 주도 인물들은 통영 면사무소 등사판을 가지고 통영읍내에서 10리쯤 떨어져 있는 산양면사무소로 가 그곳에 있는등사판과 합한 2대의 등사판으로 "조선의 형제, 자매들은 대한독립을 외치고 행진곡에 발맞추어 금강의 꼭대기까지 나아가자"라는 격문을 600매 인쇄하였다. 이 격문은 진평헌이 쓰고 양재원·배익조가 등사하였다. 14일 오전 1시 30분경 강세제·이학이·허장완은 통영면사무소에 등사판을 반환하러 갔다가 대기 중이던 형사에게 잡히고, 나머지는 오전 3시 통영읍으로 돌아오다가 붙잡혔다. 체포된 강세제는 5월 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대구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연달아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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