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受禧
(1885)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姜以中, 姜鏡湖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수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중국 안도현(安圖縣)에서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 경리과장(經理科長)으로 활동하였으며, 1923년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대표로 참석하였다. 대한광복단은 1920년대 초 북간도(北間島)에서 활동한 독립군단으로 1919년 3ㆍ1운동 직후에 김성극(金星極)과 김성륜(金聖倫)이 이범윤(李範允)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공교회(孔敎會) 인물들을 중심으로 왕청현(汪淸縣) 대감자(大坎子)와 의란구(依蘭溝) 일대에서 편성된 항일무장단체였다. 단장 이범윤은 상징적 인물이었으며, 중부대판(中部大辦)의 직함을 가졌던 김성륜이 단의 실제 책임을 맡았다. 1920년 8월 현재 병력 200여 명에 소총 400정, 탄약 1만 1천 발, 권총 30정의 무장력을 갖추고 있었다. 강수희는 1922년 10월 2일 북간도지방(北間島地方) 강구우(姜九宇),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정신(鄭信),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허동규(許東奎), 대한구국단(大韓救國團) 정남윤(鄭南允),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 신일헌(申日憲) 등과 함께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상해로 왔다. 국민대표회의는 1923년 1월부터 6월까지 국내외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개편을 비롯하여 독립운동 방략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 생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같은 해 6월 7일 국민대표회의에서 조직된 국민위원회 국민위원(國民委員)에 선임되었다. 1926년에는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지인사(志仁社) 국자가(局子街) 하시장(下市場)에 설립된 대동학원(大同學院) 교육위원(敎育委員)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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