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淵碧
(1901)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연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0~1931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 이호래(二戶來)에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관할 신흥학교(新興學校) 교감(校監)으로 활동하고, 1932년 2월경까지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공안소원(公安所員)으로 환인현(桓仁縣) 지방 재무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조선혁명군은 1927년 9월에 개최된 정의부(正義府) 중앙회의(中央會議)에서 정의부 의용군(義勇軍)의 명칭을 개칭한 것이며, 1929년 4월 정의부 주도세력이 국민부(國民府)를 결성하자 그대로 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혁명군은 국민부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휘하의 군사조직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이전에는 주로 친일세력 숙청, 교민 보호, 국내 진입작전에 의한 일제 기관 파괴 및 일제 관헌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일제와의 투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간부 진용은 여러 차례 변화되었는데 1930년 8월 8일 개최된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中央執行委員會)에서는 제1중대장 김보안(金保安), 제2중대장 양세봉(梁世奉), 제3중대장 이윤환(李允煥), 제4중대장 김문거(金文擧), 제5중대장 이종락(李鍾洛) 등이 임명되었다. 1930년대 후반까지 만주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강연벽은 1932년 2월 6일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통화영사관(通化領事館)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같은 해 5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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