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永珏
1896-02-28 ~ 1946-02-0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영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강서(江西) 사람이다. 미주지역에서 국민회(國民會)와 임시정부후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합성협회(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국민회(國民會)가 1910년 5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탄생한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였다.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중앙총회 아래 북미·하와이·멕시코·시베리아·만주 등 다섯 곳에 지방 총회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지방총회 아래 116개의 지방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강영각은 미국 후레이몬드 대학을 졸업한 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인쇄사업을 경영하는 한편 한인사회단체인 국민회(國民會)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임시정부후원회가 결성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1932년 4월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투탄의거에 고무된 와히아와 지방의 한인들과 함께 임시정부 와히아와 후원회를 조직하고 독립자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교육자로서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서는 한편, 『국민보(國民報)』의 영문주필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며 안창호가 붙잡히자 흥사단(興士團) 단원의 자격으로 석방운동에 주력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7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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