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永三
미상 ~ 1920-10-21·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영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3일 중국 용정(龍井)에서는 북간도 최대 규모의 3·1운동 집회라 할 수 있는 '조선독립축하회(朝鮮獨立祝賀會)'가 개최되었다. 이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북간도 각 지방대표들은 '3·13운동' 직후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를 결성하였다. 조선독립기성회의 주요 인맥은 1910년대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와 간민회(墾民會) 활동을 통해 북간도 한인사회의 자치와 민족주의교육,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를 추대하기로 하고 회의 명칭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로 개칭, 대한국민회 규칙에 "임시정부 법령 범위 내에서 독립사업 완성을 기도함을 목적"한다고 하여 임시정부 직할의 북간도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단체임을 명백히 선언하였다. 대한국민회는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 본부를 두고 8개 지방회와 지방회 산하 130여개 지회를 두어 북간도 전역의 한인사회의 자치와 독립군 편성, 군자금 모집 등 폭넓은 항일운동을 추진하였다. 대한국민회 조직후, 1920년경 길림성 연길현(延吉縣) 용지향(勇智鄕) 화흥자( 興子) 유림촌(柳林村)에서 대한국민회 동부지방회(東部地方會) 제2지회 부회장과 통신부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1920년 10월 21일 상삼봉(上三峯) 병참수비대장 교본(橋本)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이 마을을 습격하고 한인들을 학살할 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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