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永斅
(1880) ~ 1949-12-0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姜永孝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영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부터 1945년까지 하와이에서 국민회(國民會) 북고나 훌루알로아지방회 회장, 대한인국민회 힐로지방회 법무원, 하와이 국민대표기성회(國民代表期成會) 재무, 대조선독립단(大朝鮮獨立團) 부단장, 『단산시보(檀山時報)』 주필, 하와이 한인협회(韓人協會) 서기, 하와이교민총단 의사원, 하와이 국민회 부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서기,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하와이지부 평의원, 하와이 국민회 법무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09년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布?地方總會) 북고나 훌루알로아지방회 회장, 1910년 동 지방회 회장 및 서기, 1914년 하와이 힐로지방회 법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 하와이에서 국민보안공동회와 갈리히연합회를 조직하고, 조용하(趙鏞夏)ㆍ조병요(趙炳堯) 등과 함께 『태평양시사(太平洋時事)』 발간에 참여하였다. 1921년 10월 황사용(黃思溶)ㆍ신홍균(申洪均)ㆍ조병요 등과 함께 하와이 국민대표기성회를 조직하고 재무로 선출되어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촉구하였다. 1921년 대조선독립단 부단장, 1922~1924년 단장 대리·총서기·부단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던 박용만(朴容萬)에게 송금하였다. 1925년 5월 호놀룰루에서 『단산시보』를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하였다. 1930년 3월 독립운동 촉진을 위해 안원규(安元奎)·박상하(朴相夏) 등 29인과 함께 하와이 한인협회를 조직하고 임시위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7월 서기를 맡았다. 1932년 1월 하와이교민단 의사회에 호놀룰루 의사원으로 참가하여 의사회(議事會)를 조직하고 의사장으로 선출되었다. 1933~1934년 하와이 국민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의 항일운동을 후원하였다. 1937년 2월 하와이 국민회 역사편찬사료수집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42년 펀치볼지방회 대의원, 1943~1944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협찬위원회 서기 및 회계검사로 활동하였다. 1944년 2월 하와이 국민회 총재무 겸 국민보사(國民報社) 총재무, 5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재미한인의 통일 공작 실현을 위해 선정한 조사연구위원,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 평의원, 10월 검찰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45년 1월 하와이 국민회 법무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09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금, 3.1금 등의 명목으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6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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