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日(星求)
1911-03-25 ~ 1974-01-21·현대
이명·자·호 姜星求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26년 6월 고향에서 군중들과 함께 일본학교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펴다 붙잡혔으나 미성년자로서 풀려났다고 한다. 그후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이에 호응하여 동조시위를 펼 것을 계획하고 1930년 2월 유복윤(柳福允)·노명우(盧明愚) 등과 함께 항일격문을 제작하여 부여농업보습학교(扶餘農業補習學校)에 살포하였는데, 이일로 인하여 일경에 붙잡혀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1931년에는 비밀결사 화성당(火星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펴던 중 붙잡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후 1936년 화성당의 재건을 시도하다 재차 붙잡혀 1년 동안 구금당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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