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昌元
(186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창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해주(海州)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해도의 도청 소재지인 해주에서는 1919년 3월 1일에 독립선언서의 봉독식과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 3월 말부터 옹진군 각 면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4월 3일에는 가좌면(茄佐面) 취야리(翠野里) 취야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크게 일어났다. 이 취야리는 옹진군 마산면(馬山面)과 장연군 모곡면(牡谷面) 방면에서 해주로 들어가는 큰 길이 모이는 곳으로서 교통이 번잡하고 시장이 번화한 곳 인데, 이날 취야장을 기회로 천도교인·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던 만세운동 계획이 드디어 실현을 본 것이다. 강창원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이후 조선의 독립을 염원해오던 중,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된 것을 전해 듣고 조선의 독립을 이루고자 이 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6백여 명의 시위대는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여 수천 명으로 불어나 면사무소와 주재소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였다.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가 해산하고 다수의 부상자와 피검자가 나왔다. 시위 후 체포된 강창원은 1919년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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