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處珏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처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8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 근거를 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운산지단(雲山支團)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길 안내, 지역 내 자산가 조사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농무계(農務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義兵運動)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다. 본부(本部)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었으며,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圭)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ㆍ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국내외에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ㆍ지부를 설치하였으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는 관구(管區)를 설치하고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환인(桓仁)ㆍ장백(長白)ㆍ무송(撫松)ㆍ임강(臨江)ㆍ관전(寬甸)ㆍ집안(輯安) 등 10개 현에 지단을 세웠다. 이후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거쳐 의군부(義軍府)로 발전하였다. 강처각은 1920년 8월경 대한독립단 운산지단에 가입해 대한독립단원의 국내 활동을 지원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24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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