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春瑞
(187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춘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평창(平昌) 사람이다. 박내혁(朴來赫) 의진에 가담하여 강원도 평창·정선(旌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 직후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강제 체결하면서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거족적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언론과 교육부문에 의한 국민 계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의 의병운동이었다. 특히 의병운동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강춘서는 이같은 시기에 박내혁 의진에 참여하여 강원도 평창·정선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1908년 음력 4월경 박래혁 의병장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0월 1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3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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