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弘烈
1895-05-08 ~ 1958-01-2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姜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강홍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그는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을 가지고 고향인 경남 합천(陜川)으로 돌아와 비밀리에 합천의 전군(全郡)에 전달 배포하는 등 3·1독립운동의 조직적 확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후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1923년 5월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대회(國民代表大會)에 보천교(普天敎)의 대표자격으로 참가하였으며 그후 의열단장(義烈團長) 김원봉(金元鳳)의 권유로 의열단에 입단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투쟁적인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1924년 2월 상해에서 동지들과 함께 독립군의 군자금 조달에 관한 협의를 한 후 국내에 잠입하여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경찰관서 등 일제의 주요 관서 폭파 및 고관 암살 등을 기도하던 중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그리하여 2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죄가 적용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합천에서 삼일의숙(三一義塾)을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광복이 될 때까지 임정의 경남내무부장(慶南內務部長)으로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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