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慶宰
(187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高庚在, 高京在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경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6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수분대전자(綏芬大甸子)에서 독립군 양성을 위한 무관학교인 제1고등국민학교 일명 북빈의용단(北濱義勇團) 교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제1고등국민학교는 1913년 조직된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의 후계 무관학교로 일본과의 독립전쟁에 대비하여 중견이 될 장교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이동휘(李東輝)ㆍ이종호(李鍾浩)ㆍ장기영(張基永) 등이 설립하였다. 학교 건물과 기숙사의 건축은 주민들이 담당하였고, 학교유지 경비는 이종호가 맡았다. 장기영이 교관 모집과 교과서 수집을 담당하였고, 김규면(金圭冕)ㆍ전일(全一)ㆍ조응순(趙應順) 등이 학생을 모집하였다. 처음에는 학생 수가 70명이었으나 1916년 1월 말경에는 80명이 재학하였다. 중국 지방 육군부대에서 기증한 장총 10자루와 중국 운남 강무당의 한운용(韓雲用)과 이용(李鏞) 등이 보낸 중국어판 군사학 교재를 교과서로 활용하였다. 1916년 1월 말 당시 교장은 중국인 왕환장(王換長)이었고, 교사는 고경재 이외에 오영선(吳永善)ㆍ김성남(金星南)ㆍ장기영 등이었다. 고경재는 1916년 북빈의용단 교사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1919년에는 왕청현 토강자(吐崗子)에서 충열단(忠列團)에 가입하고 단원을 모집하여 무술 훈련을 시켰다. 1920년 8월 이범윤(李範允)의 부하 안빈(安斌)ㆍ박창호(朴昌鎬) 등과 함께 훈춘현(琿春縣) 동구(東溝)ㆍ태평구(太平溝), 왕청현 대감자(大坎子) 등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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