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明信
(186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명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이원(利原) 사람이다. 유기운(劉基雲)·고익규(高翊奎) 의진에 가담하여 함남 이원·북청(北靑)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에 강제로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한국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에 광분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국권회복을 위해 분투하였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고명신 역시 국권회복에 뜻을 두고 1907년 12월 의병장 유기운(劉基雲) 의진에 가입하여 동지 300여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함남 이원·북청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어 1908년 음력 정월에 다시 고익규 의진에 들어가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이원군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던 중 붙잡혀 1909년 2월 5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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