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明柱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명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장수(長水) 출신으로 덕유산(德裕山)에 근거를 둔 문태수의진(文泰洙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문태수는 경남 안의(安義) 사람으로 1905년 11월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1906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북 무주(茂州)에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러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하순 전북 장수읍을 점령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문태수의진은 전북 무주 부남면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1907년 12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편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에 참여하여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다. 고명주는 문태수의진에 참여하여 전북 장수군 계북면(溪北面) 문성동(文城洞)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고명주는 김준대(金俊大)·고원중(高元仲)·신치수(辛致守)·안왈오(安曰五)·심우상(沈尤相)·조경화(趙京化)·하준태(河俊太)·한청여(韓淸汝) 등 20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장수·용담 등 부근의 촌락에서 군수품을 수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9년 9월 20일 체포되었다. 고명주는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태형(笞刑) 10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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