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奉朝
1920-09-11 ~ 1963-10-08·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봉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제주(濟州) 사람이다. 1940년 3월 일본대학(日本大學) 전문부(專門部) 특과(特科) 야간부에 재학하던 중, 낮에는 김봉각(金奉珏)의 매형이 경영하는 금성제작소(金城製作所)에서 김병목(金丙穆)과 함께 근무하면서 "조선청년의 갈 길은 오직 하나, 민족해방을 위하여 헌신하는 길뿐이다"는 김봉각의 주장에 공감하고 함께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담론한 끝에, 강금종(姜金鍾)·한만숙(韓萬淑) 등의 동지를 규합, 같은 해 5월 흥아연구회(興亞硏究會)를 조직,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어 일본 국내정세의 변화에 따라 조직을 더욱 확대 강화하기 위해 흥아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한인비밀결사인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를 결성, 행동방침을 정하고 항일민족운동을 강화하던 중 1941년 2월 25일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 뒤 1942년 11월 18일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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