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瑞東
1912-12-08 ~ 1990-06-17·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서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고흥(高興) 사람이다. 1933년 12월 전라남도 장흥(長興)에서 고율 소작료를 징수하는 지주들의 횡포에 대항할 농민조합(農民組合)의 조직을 완도(莞島)의 정후균(鄭後均)과 협의하고 야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회주의(社會主義)를 고취시켰다. 이후 1934년 1월 정종배(丁鍾蓓)의 권유를 받고 공산주의 사호를 건설할 목적으로 유재성(劉載星)·문병곤(文秉坤)·김두환(金斗煥)등과 더불어 각 부락에 2명 내지 5명의 인원으로 농민반(農民班)·청년반(靑年班)·소년반(少年班)을 설치하여 하부로부터 상부에 이르는 방법에 의거하는 장흥적색농민조합(長興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고, 면(面) 또는 리(里)단위의 세포반을 결성하려다가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37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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