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泳國
1887-08-23 ~ 1946-02-2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高榮國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영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공주군(公州郡)에서 청림교(靑林敎) 교도가 되어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쳤다. 일제하 청림교는 민족적 색채를 띠고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특히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청림교도들은 국권회복을 꾀하고 나아가 독립을 도모할 목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거두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이 유럽을 유린하고 아시아에까지 침략할 것이라고 하여, 그 전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청림교에 입교하여야만 한다고 포교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피하기 위해 충남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마곡사(麻谷寺) 및 신상면(新上面) 유구(維鳩) 사이로 1,000여명의 신도들을 이주시키려 하였다. 당시 공주 사곡면 가교리(佳橋里)에 살던 고영국은 1916년 음력 1월 조석홍(曹錫洪)의 권유로 청림교에 입교하여 원류라고 기재한 청림교의 신표를 받았다. 고영국은 1916년 11월 12일 이후 15명에게 포교하여 회비로 금 239원 90전을 거두었다. 이같이 고영국 등 청림교도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거두는 등 민족정신을 고취시키자 일제는 1917년 2월 이들을 체포하여 2월 21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하였다. 고영국은 1917년 11월 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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