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仁德
1887-11-03 ~ 1926-12-2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인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밀양(密陽) 사람이다. 대구 계성중학(啓星中學)을 졸업한 그는 1918년 11월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다. 길림(吉林)과 상해(上海)를 왕래하면서 조국 해방운동을 전개하던 중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상해에서 의열단장(義烈團長) 김원봉(金元鳳)·이종암(李鍾岩) 등과 밀의하여 상해에서 구입한 폭탄을 휴대하고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 최경학(崔敬鶴, 일명 秀鳳)에게 폭약과 폭탄제조기를 주었다. 최경학은 폭탄 두 개를 만들어 1920년 12월 27일에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 파괴공작을 감행하였다. 이 사실이 발각됨에 그는 연루자로 붙잡혀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년 6개월만에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출옥후 다시 국외의 동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폭탄과 무기를 구입하려고 가산 전부를 처분, 3천원을 만들어 그 돈으로 특파원을 상해에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1925년 11월 권총과 폭탄 등 무기를 준비하고 이종암(李鍾岩)·배중세(裵重世)·한봉인(韓鳳仁) 등과 거사하려 할 때 원통하게도 사전에 일경에게 탐지되어 이종암이 붙잡히는 바람에 그도 붙잡혀 12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는 대구형무소 병감 안에서 1926년 12월 21일 심장병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3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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