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鎭句
(188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고진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북청군(北靑郡) 상거서면(上車書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천도교인 안정관(安正官)이 조선독립선언서를 보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한 후 박희순(朴熙舜) 박계학(朴界學)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고진구는 16일 장두병(張斗炳)과 함께 상거서면 상돌리(上乭里)에서 이종률(李鍾律) 등 30여 명의 천도교인을 규합하여 17일 전개될 방촌(方村) 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이종률도 엄동리(嚴東里) 천도교인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17일 안정관 등 천도교 지도자들은 고진구 등 교인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방촌시장을 행진하였으나, 일본 경찰들의 제지로 해산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고진구는 1919년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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