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義彬
미상 ~ 1922-09-11·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곽의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대원들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1922년 9월 중국 관남현(寬南縣) 궁자구(弓子溝)에서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참살(慘殺)당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준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단체로 조직되어 한인사회의 자치행정과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하였다. 한인자치를 위해서는 각 지역별로 총관소(總管所)를 설치했는데 1922년 말~1923년 초에 개최된 통의부 제1회 중앙의회에서는 관서(寬西) 등 각 지역에 총 16개의 총관소를 두기로 하였으며, 총감(總監)은 1,000호(戶)의 장(長)으로 하고 담당구역을 4~5개로 나누었다. 총관소에는 총감 이하 구장(區長),참사(參事),서기(書記),검무감(檢務監),검무원(檢務員),통신원(通信員)을 각 1명씩 두었다. 대한통의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의열단,광정단(匡正團) 등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꾸준히 연계하며 공동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24년 11월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면서 상당수가 이에 흡수되었다. 곽의빈은 대한통의부 관남총관소(寬南總管所)가 무장한 일제 경찰이 26명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총관 최준(崔準) 및 재무 지성준(池成後)이 교전 중 전사 당하는 상황에서도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후 일경(日警)에게 다시 체포되어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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