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鍾烈
1899-01-15 ~ 1929-06-0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郭學伊
1922년 일본 교토(京都)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 유학한 이후 교토유학생학우회에 가입했다. 1926년에는 기관지 『학조』 발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7년 1월부터 조선공산당 경기도당 선전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일본 경찰이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공판의 방청을 금지하자 이에 대응하여 경무국을 방문하여 항의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6월 신간회 교토지회 창립 당시 유학생들을 주도하여 창립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1928년 6월에는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서남야체이카 부책임에 임명되었다.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은 같은 해 2월에 있었던 조선공산당 제3차 대회에서 제4차 조선공산당의 조직부장으로 선임되었던 김한경(金漢卿) 등의 지원으로 결성된 것이었다. 일본총국의 책임비서는 한림(韓林), 서남야체이카 책임은 송재홍(宋在洪)이었다. 곽종열은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가담한 것을 계기로 일본 관헌의 본격적인 감시와 수배의 대상이 되었다. 1929년 6월 5일 일제의 감시를 피해 활동하던 중 사망했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7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