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泰鉉
1926-12-20 ~ 2003-07-20·현대
이명·자·호 대촌태현(大村泰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곽태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곽태현은 1939년 8월 29일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長湖院)의 제1심상소학교(第一尋常小學校)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는 박영순(朴英淳)의 집에서 ‘조선의 독립’을 지향하는 비밀결사 독수리소년단(荒鷲少年團, 아라와시소년단)을 조직하였다. 박기하(朴箕河)를 단장으로 결성된 독수리소년단은 장호원제1심상소학교 4~6학년에 재학 중이던 10여 명의 소년들이 항일독립운동에 뜻을 모아 결성한 조직이다. 원래는 학교당국의 학생 근로동원을 위한 조직인 ‘아라와시소년대(黃鷲少年隊)’에 대항하기 위해 그 이면단체로 결성한 것이었다. 10대 초중반의 단원들은 직접 닭을 기르고 보리·콩 등을 경작한 수입으로 결사의 경비를 조달하였다. 매주 1~2회씩 담력 키우기, 체력과 정신력 단련, 충무공사당(忠武公祠堂) 참배 등을 통해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키워갔다. 1942년 2월에는 장호원 읍내 곳곳에 ‘조선독립’과 ‘민족단결’을 촉구하는 벽보를 붙였다. 항일격문을 작성하여 각지의 군수들에게 일본이 곧 패망할 것이니 조선총독부에 협조하지 말고 “조선민족의 단결로 자주독립”을 이루자는 요지의 우편물을 발송하기도 했다. 1942년 3월 초순경 단원들과 함께 장호원경찰주재소(長湖院警察駐在所)에 체포되었다. 곧바로 이천경찰서(利川警察署)로 이송되었다. 같은 해 10월 ‘주범(主犯)’으로 지목된 곽태현 등 4명은 기소되었다.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 여주지청(驪州支廳)으로 송치되었다. 40여 일 동안 취조와 고문을 받은 뒤 같은 해 11월 18일 기소유예(起訴猶豫)로 풀려났다. 이후 사상범보호관찰소(思想犯保護觀察所) 소속 뚝섬농장에 수용되어 노역을 당했다고 한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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