具順岩
(1907) ~ 1932-05-0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山田春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구순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구순암은 1930년 초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에 가입하여 각지에서 일어난 노동쟁의에 관여하면서 항일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1932년 4월 강유홍은 일본 암수현(岩手縣) 기선군(氣仙郡) 시작촌(矢作村) 대선도선철도공사장(大船渡線鐵道工事場)에서 한인 노동자의 동맹파업 지도하도록 전협 토건노조 상임위원회의 지시를 받았다. 암수현의 작업장은 전협 토목건축노동조합의 지도하에 자유노동자가 동맹파업을 하고 있었다. 이 파업은 전협의 대표적 동맹파업이었는데, 1932년 4월 26일 각 반장(飯場) 및 활동가 60여명, 일본인 4명이 참가하여 동맹파업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노동시간의 단축, 임금 인상, 부상수당 지급, 해고 반대 등이었다. 노동자들은 4월 28일 일단 업무를 중지하고 동맹파업을 결의하였다. 구순암 등 한인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단행하자 당황한 유전조(有田組)는 일제의 경찰, 소방대 등을 동원하여 파업을 진압하려고 하였다. 5월 2일부터 파업 진압이 시작되어 100여명의 폭력단이 투입되었다. 5월 4일 저녁 폭력단은 술을 마시고 파업을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전협에서 파견된 동지 강유홍(姜有鴻)이 폭력단이 휘두른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피신하였으나, 쫒아가서 구타하여 살해하였다. 뒤이어 폭력단에게 붙잡힌 구순암도 뽕나무밭으로 끌려가 살해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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