具泳書
1898-01-26 ~ 1977-03-15·현대
이명·자·호 具厚泳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구영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1일 공주군에서는 공주 읍내와 정안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정안면 석송리의 유림 이기한・이병억(李秉億)은 마을 주민들을 모아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2~30명의 주민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소재지인 광정리로 향했다. 만세 행진을 하던 중 오후 12시경 내촌리(內村里)에서 식수(植樹) 작업을 마친 운궁리(雲弓里) 주민 등을 만나 만세운동 참가를 권유했다. 이에 강억쇠(姜億釗)・김오룡(金五龍) 등 20여 명이 작업도구를 갖고 만세 군중에 합류했다. 또한 광정리 길목에서 전평리(田坪里) 등 마을의 주민들도 합세했다. 약 300명의 군중은 광정리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광정경찰관주재소를 공격했다. 군중들은 돌을 던지거나 막대기나 삽 등의 농기구로 유리창, 장지문, 게시판 등을 부수고 담을 무너뜨리는 등 건물을 파손했다. 구영서는 만세운동 참가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구류되었다. 8월 1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예심종결결정으로 공판에 회부되어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10월 1일 공주감옥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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