具在均
1898-03-11 ~ 1949-09-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구재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23일 창원군 창원읍(昌原邑)에서 장날을 기하여 설관수(薛灌洙)·공도수(孔道守)·김호원(金浩元)·조윤호(曺潤鎬)·신갑생(申甲生)·조희순(曺喜舜) 등과 주동이 되어 장터에 모인 시위군중 7,0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같은 해 4월 2일 장날을 기하여 2차 시위운동을 펴기로 결의하고 수많은 시위군중을 규합,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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