具正燮
1884-06-04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具正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구정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5년 5월 8일 사이베리아(Siberia)호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하여 사탕수수농장에서 노동하였다. 1906년 3월 미주 본토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왔다. 11월 공립협회(共立協會)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07년 11~12월경 철도 노동을 위해 솔트레이크시티(鹽湖市)로 이주하며 동(同) 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후 다시 대한인국민회 리버사이드지방회(河邊地方會)로 옮겼다. 1912년 평의원, 1913년 구제원, 1914년 8월 법무원, 1917년 구제원, 국민의무금 수봉위원(收捧委員)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 동 지방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부회장 정인영과 함께 지방회 업무를 이끌었다. 1919년 임원 선출시 지방회 재무 겸 법무원으로 선임되었다가 다시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2월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 식자기계 청장 동맹자 500인 모집시 40회 동맹자가 되었다. 1923년 리버사이드에서 과채(果菜) 판매상점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10월 국내의 수재(水災) 피해를 돕기 위해 캘리포니아 남부 한인들이 각 지역 의연금 모집위원을 선정할 때, 리버사이드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3년 2월 하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로스앤젤레스(羅省)에서 개최된 원탁회의에 참석하여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 1908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자금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7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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