具昌會
1897-05-27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富原昌會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구창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4일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시장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괴산 군민 약 700명은 경찰서·우편국·군청 등 관공서를 습격하고 돌을 던졌다. 당시 23세의 나이로 괴산군 면서기 신분으로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17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소요(騷擾)’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서울에서 1925년 4월 이후 시대일보 판매부 서기로 지내면서, 화요회의 일원으로 조선공산당에 가입했다. 1926년 4월 정우회 결성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이후 회계부를 맡았다. 같은 해 7월경 주의자들에 대한 ‘대검거’로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29년 3월 17일 만기 출옥하였다. 1930년 2월경 신간회원으로 격문 인쇄 및 살포 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같은 달 22일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킬 목적으로 격문을 작성한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취조를 받았다가 1930년 3월 불기소 석방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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