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慤
1923-03-03 ~ 1943-03-23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40년 9월 서울의 사직공원(社稷公園) 정문 앞 국세조사선전(國勢調査宣傳) 입간판(立看板)에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써 붙였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0년 9월 초순 서울 조선문화학원(朝鮮文化學院) 중등과(中等科) 1학년에 재학 중 동급생 손용우(孫龍祐)·안병구(安秉九)·이동찬(李東燦) 등과 함께 학생들에게, 구주대전(歐洲大戰)에서 독일이 승리한다면 일본을 공격할 터이므로 이 기회를 조선독립의 호기로 삼아야 하며,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신라정벌(新羅征伐)과 같은 역사 왜곡과 동아일보(東亞日報)·조선일보(朝鮮日報) 폐간 등을 비판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0년 9월 28일 일반인에게 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손영우·김태현(全泰賢)·박래수(朴來洙) 등과 함께 사직공원 정문 앞 국세조사선전 입간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써 붙였다가 체포되었다. 1940년 11월 6일 종로서(鍾路署)에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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