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甲得
1893-02-14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權澹, 權武民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갑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9일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면 괴산시장에서 학생 등 1,600여 명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날인 3월 24일에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괴산면 거주 홍성희(洪性憙)는 괴산면 서기 구창회(具昌會)와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한 후 괴산시장으로 나갔다. 오후 6시 이들은 시장에 집결한 약 2,000여 군중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권유하고 소수면(沼壽面) 서기 김인수(金仁洙) 등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시위군중은 괴산경찰서·괴산우편국·괴산군청으로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홍성희가 체포되자 이들은 귀가하는 군중들에게 호소하여 동포가 체포되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므로 만세운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권갑득도 인산교에서 연설하여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들은 일본 경찰과 충주에서 파견된 수비병에 의해 검거되었고 시위 군중은 오후 11시에 해산하였다. 권갑득은 1919년 4월 17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소요(騷擾)’ 혐의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7일 경성복심법원, 1919년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죄가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징역 8월 4일형으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