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甲奉
1924-12-25 ~ 2002-06-07·현대
이명·자·호 權甲春, 板甲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갑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43년 여름부터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미군이 공습하여 한반도에 상륙할 때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선전하고 동지를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일본에서 오사카관서공학(大阪關西工學) 1년을 수료하고 토공(土工)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43년 여름 마사키(正木)라는 선배를 만나면서 민족의식을 깨우치게 되자, 그해 11월 독립운동 추진을 결의하고 동지 모집을 계획하였다. 그는 "미국은 대공습을 단행하고 조선에 상륙하여 독립을 원조하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단결을 강고히 하는 그 시기에 일제 봉기해야 한다"는 등 선전을 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봉기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일로 1943년 12월 21일 일본 와카야마현(和歌山縣) 경찰에게 체포된 뒤, 1945년 3월 1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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