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南善
1889-07-21 ~ 1972-01-1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남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남도 통영(統營) 사람이다. 1919년 3월 13일 통영읍(現 忠武市)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3월 9일과 3월 12일 진평헌(陳平軒)·김형기(金炯綺)·양재원(梁在元)·배익조(裵益祚)·모치전(牟治田)·강세제(姜世濟)·이학이(李學伊)·허장완(許璋完) 등과 만나 독립만세운동에 대하여 논의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는 이들과 함께 3월 13일 오후 8시경, 통영면사무소 등사판을 가지고 10여리쯤 떨어져 있는 산양면(山陽面)사무소로 가서 그곳의 등사판과 2대의 등사판으로 진평헌이 기초한 격문 1천 2백여매를 밤을 새워가며 등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등사에 필요한 용지 2천매를 일본인이 경영하는 중촌상점(中村商店)에서 구입하였는데, 그 주인이 이 사실을 일본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이 즉시 수사에 나섰다. 이튿날 새벽 1시 30분경, 이 사실을 모른 채 등사를 끝내고 통영면사무소에 등사판을 돌려주기 위하여 갔다가, 강세제·이학이·허장완이 매복중이던 형사에게 체포되고, 그도 새벽 3시에 통영읍으로 돌아오다가 형사대에 체포되었다. 이해 6월 30일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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