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達五
미상 ~ 1908-04-04·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달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윤만파(尹萬波) 의진의 중군장(中軍將)으로 경북 경주(慶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등 한국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이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에 본격적인 저항을 하거나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권달오는 이같은 시기에 윤만파 의진에 가담하여 중군장으로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윤만파 의진에 종군하면서 1908년 4월 4일 경주 장임대동(長任大洞) 서방 고지에서 일본군 경주수비대(慶州守備隊)와 교전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접전 중 의병 50여 명 가운데 24명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당했다. 이때 그는 크게 상처를 입고 일본군에 붙잡혔다가 곧바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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