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德元
(1878-08-0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덕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8월 충북 영동군(永同郡) 양내면(陽內面)에서 조석우의진(趙錫祐義陣)의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유력한 의병장들의 전사와 일본 군경의 탄압으로 의병 활동이 점차 위축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북 운봉(雲峰) 출신의 조석우는 1909년 8월 23일 충북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영국사(寧國寺)에서 장군선(張君先)ㆍ조덕장(趙德章)ㆍ권덕원 등과 모임을 갖고 삼남대장(三南大將)이라 하여 총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장군선ㆍ조덕장ㆍ권덕원은 부장(副將), 이기덕(李起德) 등은 병졸(兵卒)이 되었다. 이들은 독립을 위해서 일본인과 친일파를 처단하고 철도 정거장 등 일제의 침략 거점을 공격하자는 격문을 띄우는 한편, 양남면(陽南面)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권덕원은 각 처에 격문을 배포하고, 주변 마을에서 15세 이상 40세 이하의 장정들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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