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道仁
1888-09-27 ~ 1962-04-2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Doin Kwon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도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미주 지역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합성협회(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국민회(國民會)가 1910년 5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탄생한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였다. 이때 하와이에 거주하던 권도인은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골노아지방회의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3·1운동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미주 한인사회는 임시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통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 1925년 임시정부의 이승만 탄핵과 더불어 구미위원부가 폐지됨에 따라 미주지역의 독립운동은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나,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면서 인구세와 혈성금(血誠金) 등을 통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그는 1937년 대한인국민회의 재무를 담당하면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앞장섰으며, 1938년에는 하와이 연합의회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중국 지역에서 1938년 조선의용대가 결성되자, 미주에서도 이를 후원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 1939년 4월 의용대후원회가 뉴욕에서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등 미주 본토와 하와이, 쿠바, 멕시코 등에 지부가 설치되었다. 이들은 배일선전과 군사후원금 모집을 위한 각종 대중집회와 기념대회를 개최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40년 5월에는 대내외 공작의 통일을 위해 의용대후원회 연합회를 발족시켰는데, 이때 권도인은 연합회의 대표로 선임되었다. 그는 1941년 4월 하와이 호놀롤루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연합회의 대표로 참가하여 미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에 힘을 쏟으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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