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錫根
(1885) ~ 1907-11-04·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석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고성(高城) 사람이다. 김옥배(金玉培) 의진에 가담하여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신문과 잡지를 통한 언론 활동, 종교와 그 단체를 통한 활동 계몽, 각종 학회와 사립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활동, 국어와 국사 연구를 통한 학술 활동 등 각 방면의 국민계몽운동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그것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같은 시기인 1907년 권석근은 국망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김옥배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김옥배 의병장의 지시에 따라 이덕근(李德根)과 같이 고성군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동정을 정탐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11월 4일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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