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成凡
(189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성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1월경 중국 길림성(吉林省)에서 의군단(義軍團)의 일원으로 일본 밀정 처단에 동참하고, 같은 해 음력 2월 러시아 수이푼(秋豊)에서 총기를 구입하여 길림성 연길현(延吉縣)의 의군단 총무에게 인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4월경 조직된 의군단은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 대한의군단도독부(大韓義軍團都督府) 등으로 불렸다. 1920년 음력 1월 의군단에 입단하여 의군단 소대장 석경수(石景洙)의 지휘 아래 수십 명의 단원들과 함께 중국 화룡현(和龍縣) 합화사(合化社) 하광포(下廣浦)에 있는 일본 밀정 신명균(申命均)과 이해산(李海山)을 처단하는데 동참하였다. 신명균을 삼도구(三道溝) 대침산(大砧山)으로 끌고가 처단할 때 망을 보았고, 이해산을 의군단 본부인 삼도구로 연행하였다. 1920년 음력 2월에는 의군단 소대장 이범모(李範模) 등 단원 60명과 함께 러시아령 수이푼 일대로 총기 구입을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음력 6월 수이푼에서 장총(長銃) 70정을 구매한 뒤 중국 길림성 연길현 의란구(依蘭溝)의 의군단 총무 최운곡(崔雲谷)에게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19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불법체포, 살인죄로 징역 12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21년 11월 25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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