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壽童
1908-11-15 ~ 1949-05-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수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무안(務安) 사람이다. 1926년 4월 광주농업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당시 일제의 차별교육에 대하여 분개하던 중 광주고보에서 맹휴(盟休)가 일어나자 일인교사 성강(盛岡)의 민족적인 차별교육을 성토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재학생 115명의 날인을 받아 교장에게 제출하였다. 그러나 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자 1928년 6월 27일 동맹휴학을 주동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1929년 5월 무등산(無等山)에서 항일독립운동과 사회개혁을 위한 사회과학연구회 및 독서회를 조직하고 이에 가입하였다. 그는 조사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조길룡(曺吉龍)·송동식(宋東植) 등 동지들과 함께 선두에 서서 시위를 주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결국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형을 받았으나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여 1931년 6월 13일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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