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寧燾
1889-06-08 ~ 1952-03-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영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하 증산교(甑山敎)를 비롯한 종교는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전라도 고부 출신의 유생 강일순(姜一淳)은 1901년 전주 모악산 아래에서 흠치교를 창도하게 되었다. 이 종교의 주문에 '흠치흠치'라는 말이 있고,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이라고 되어 있어 '흠치교' 혹은 '태을교'라고 불렀다. 권영도는 1920년 8월중 태을교(흠치교) 신자가 되어 8인조에 소속되어 포교활동을 하였다. 권영도는 태을교의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帝位)에 올라 일제의 통치로부터 독립시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그는 태을교를 믿고 따르면 모두 독립된 국가의 국민이 되고 그 자격에 따라 관직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독립운동 자금을 거두는 일에도 열성을 다하였다. 권영도는 권영구(權寧九)의 8인조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자금으로 10원을 납부하였으며, 동리의 태부동(太夫洞) 뒷산에서 김성술(金聖述)과 함께 8임회(任會)를 개최하는 등 태을교의 활동을 열성적으로 하였다. 이처럼 권영도는 민족독립을 위해 태을교 활동을 하다가 1921년 4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권영도는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1921년 5월 16일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면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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