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殷
(187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8일 오후 10시경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화도면(和道面) 마석우리(磨石隅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권은은 이달용(李達鎔)의 권유로 주민 수십 명과 함께 마석우리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들이 시위행진을 하며 헌병주재소 앞에 이르자 시위군중은 약 1,0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내 시위 군중과 헌병은 충돌하였고, 많은 사람이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흥분한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끌려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대로 돌진하였다. 그러자 일본 헌병은 시위 군중을 향하여 사격을 가하였다. 이 같은 일제의 만행적인 발포로 4명이 죽고 6명이 부상당했으며 5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권은도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상소, 1919년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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