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淸學
1899-04-15 ~ 1981-12-13·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권청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8일 경북 달성(達城) 동화사(桐華寺) 지방학림(地方學林) 학생 권청학 등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를 부르고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다가오는 장날인 3월 30일 대구 남문 외 시장에서 의거를 단행하기로 약정하고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면서 준비를 갖추어 갔다. 1919년 3월 29일 학생들은 준비물을 감추고 동화사를 출발하여 대구로 가서 동화사 출장소에서 유숙하고, 3월 30일 큰 태극기를 장대에 달아 들고 남문 외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오후 2시가 되자 군중이 약 3,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학생들은 시장 중앙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은 일제히 호응하여 시장을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급보를 받고 달려운 일본 군경은 시위대를 총검으로 위협하여 해산시키고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 전원을 검거하였다. 권청학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1919년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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