吉昌西
미상 ~ 1910-02-10·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길창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문태수(文泰洙) 의진에서 부장(副將)으로 활약하였다. 문태수는 1905년 면암 최익현(崔益鉉)을 예방하였으며, 격문을 내어 의병을 모집할 방책을 상의하고 호남지방으로 내려가 지리산에서 거의(擧義)하였다. 1906년 9월 중순 장수(長水) 양악(陽岳)에서 박춘실(朴春實)을 만나 그를 선봉장으로 삼고 9월 하순에 장수읍을 함락시키고 일본군 30여 명을 사살하였다. 또한 1907년 1월 무주 부남면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여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빼앗은 뒤 덕유산 원통사(圓通寺)로 들어갔다. 그해 12월에 양주에서 각도의 의병진이 모일 때 호남군 100여 명을 이끌고 합세하여 호남창의대장에 추대되어 서울 진격작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길창현은 문태수 의진의 부장으로 문태수와 함께 의진을 인솔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는 1909년 말부터 무주군을 근거로 영동·옥천·청산·금산(錦山) 등지에서 항일전을 벌여 일본군 다수를 사살하고 총기를 노획하였다. 그러나 1910년 2월 10일 금산경찰서에서 파견한 일본경찰과 격전 끝에 중상을 입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