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京錄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경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장단(長湍) 사람이다. 윤인순(尹仁順)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서북부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해 분투하였다. 이러한 때 김경록 또한 반일 무장투쟁을 계획하고 있던 중, 1908년 음력 7월 의병장 윤인순의 진용에 가담하여 동료 수십 명과 무장을 하고 파주(坡州)·양주(楊州)·적성 등 경기도 서북부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윤인순은 1907년 군대해산 이후 경기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으로 1908년에 와서는 소부대 유격전술로 일본군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반일 의병활동이 활발했는데, 1907년 9월 강원도 방면에서 들어온 조인환(曺仁煥) 및 적성 출신 왕회종(王會鍾)·김진묵(金溱默) 등이 각기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활약하였다. 특히 김경록은 1908년 10월경 동료들과 더불어 파주군 파평면(坡平面)에서 친일주구로서 매국배족 행위를 자행하던 일진회원 박순옥(朴舜玉)과 김봉계(金鳳季) 두 사람을 체포하여 천천리(泉川里) 산 속에서 처단할 당시 정찰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1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10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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