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京奉
1901-02-24 ~ 미상·현대
이명·자·호 金東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경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3년 7월 중국 집안현(輯安縣)에서 참의부(參議府) 제4중대 상등병(上等兵)으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참의부는 1923년 남만지역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통합기관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간부들 사이의 이념분쟁으로 인해 분열되는 상황에서 결성되었다. 통의부의 백광운(白狂雲)ㆍ조능식(趙能植)ㆍ박응백(朴應伯)ㆍ김원상(金元常)ㆍ조태빈(趙泰賓) 등은 그 명칭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할 것을 결정하였다. 1923년 9월 정식으로 결성된 참의부는 집안, 무송(撫松), 장백(長白), 안도(安圖), 통화(通化), 유화(柳河)의 각 현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김경봉은 1924년 음력 10월 상순경 최석영(崔錫榮)ㆍ김택병(金澤柄)과 함께 위원군(渭源郡) 서태면(西泰面) 연풍동(蓮豊洞) 함태연(咸泰鉉)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다음날 밤에는 초산군(楚山郡) 앙토동(央土洞) 이석주(李錫周), 같은 달 하순경에는 위원군 서태면 송계동(松溪洞) 박승조(朴承祚)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 초산지청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3월 2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1년 3월 28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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