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京奉
1908-10-15 ~ 1957-04-04·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京順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경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제주(濟州) 사람이다. 1932년 5월 제주도(濟州島) 한림면(翰林面) 한림리(翰林里) 자신의 집에서 양병시(梁秉時)·장한호(張漢鎬) 등과 함께 구우면(舊右面) 한림리에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기관 결성을 협의하고, 같은 해 6월, 운동자연구회(運動者硏究會)를 조직하여 전책임자(全責任者)로서 연락부와 부인부(婦人部)를 담당하였다. 1933년 1월 농민조합(農民組合) 건설의 준비조직체로 농민조합창립준비위원회(農民組合創立準備委員會)를 결성, 구우면과 신우면(新右面) 지역의 조직을 담당하고 임금투쟁을 목적으로 한 파업(罷業)의 필요성을 고취하는 등 동지규합에 힘썼다. 또한 1934년 7월 양병시·장창구(張昌求) 등과 함께 노농연구회(勞農硏究會)를 조직하여 전책임자 겸 가두부(街頭部)를 맡아 조직 확대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그는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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