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公涉
(186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공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평남 중화군(中和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공섭은 3월 3일 중화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기독교회와 천도교구 신도가 함께 추진하였고, 중화 읍내와 상원면(祥原面) 신읍리(新邑里) 시가에서 일어났다. 이날의 만세시위로 체포된 김공섭은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형을 받고 "민족자결을 기회로 독립만세를 부른 것인데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한 것은 부당하다"며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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